캠핑장의 교훈
우리는 단독주택을 짓기 전에 지인들의 집을 방문하거나 단독주택 관련 책을 보기도 하고, (사실 단독주택과는 성격이 많이 다른)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방문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몇 시간의 방문이나 책을 보는 것은 그리 많은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건축주 자신의 삶이나 계획 중인 대지와는 거리가 멀 기 때문에 파편화된 인테리어 아이템 몇 가지 정도만 건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필자는 단독주택을 계획 중인 지인들에게 캠핑을 추천합니다. 캠핑은 단독주택 신축 과정의 축소판입니다.
1. 캠핑장 선택: 캠핑을 가기 위해서 먼저 캠핑장을 검색해 봅니다. 가족들과 여러 가지 문제를 두고 상의를 합니다. 캠핑장까지의 거리, 경관, 부대시설, 재난 대피장소, 캠핑장 분위기(이웃 캠퍼들의 성향), 캠핑장 이용료, 주변 가볼 만한 여행지 등, 저마다 캠핑장을 선택하는 이유들이 다양합니다. 최종적으로 완벽하지는 않지만 대체로 만족스러운 장소를 선택합니다.
2. 캠핑지 자리 잡기: 캠핑장에 도착하면 자리를 잡습니다. 햇볕이 충분해 습하지 않고 따뜻한 곳, 이웃 캠퍼들의 텐트와 적당한 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곳, 경치가 좋은 곳, 차량진입이 가능한 곳, 하천이 있다면 갑작스러운 폭우를 대비해 하천에서 조금 떨어진 곳, 땅이 단단하고 평평하며 물이 잘 빠지는 곳, 주변에 너무 큰 나무나 벌레가 없는 곳, 적당한 수목이 있어 정서적 평온함이 있는 곳,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번개가 치기 어려운 곳, 너무 외지가 아니어서 범죄에 취약하지 않는 곳에 야영지를 선택합니다.
3. 텐트 치기: 이제 텐트를 치기 위해 전체적인 구상을 합니다. 먼저 야영지에서 무엇을 할지 바비큐파티를 할지, 모닥불을 필지, 공놀이를 할지 상상합니다. 어떻게 야영을 즐길지에 따라 텐트, 화덕, 차량의 위치나 간격을 결정합니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이웃 캠퍼들의 텐트나 도로와 너무 가깝지 않도록 거리를 두고, 텐트 안에 앉아서도 멋진 경치를 볼 수 있으며 텐트 앞에는 적당한 크기의 마당을 확보하기 위해 영역을 만듭니다. 만약 우리 가족의 텐트가 하나가 아니라면 너무 가깝지 멀지도 않은 거리에 텐트를 두고 마당, 경치, 햇볕을 충분히 면할 수 있도록 나란히 (혹은 약간의 불규칙한 모양) 배치합니다.
위의 캠핑의 과정은 우리에게 단독주택 신축의 핵심들을 알려줍니다. 캠핑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단독주택 설계의 핵심을 소개하겠습니다.
1. 대지조건
우리가 주택을 짓기 위해서는 먼저 대지를 선정해야 합니다. 그것은 '캠핑장 선택'과 유사합니다.
여러 가지 선택의 요소들을 소개하기에 앞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족 간의 합의입니다. 완벽한 땅(대지)은 없습니다. 모든 가족들이 대체로 만족한 땅을 찾기 바랍니다.
① 직장, 학교, 공공시설과 거리: 한번 이동하는 캠핑장도 집에서 캠핑장 도착까지의 거리를 생각하는데 이사를 가지 않으면 평생을 살아야 할 주택에서 직장, 학교, 공공시설까지의 거리를 생각하지 않으면 어리석은 일입니다. 한두 번은 괜찮지만 매일 먼 거리를 이동하다면 몇몇 가족들에게는 괴로운 일입니다.
예정지에서 직장, 학교, 공공시설까지 이동시간 ≤ 현재주택에서 직장, 학교, 공공시설까지의 이동시간
② 토지매입비용: 최근 몇 년 사이의 단독주택 건축비 상승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올랐습니다. 토지의 가치를 판단하는 쉬운 방법은 현재 신축예정지의 매입비와 단독주택신축비(각종 인허가비+설계비+공사비+세금 등)를 더한 값이 인근 신축아파트(비슷한 면적의 아파트)의 매매가보다 작거나 같은지를 비교합니다. 크다면 단독주택에서의 삶의 가치를 기회비용으로 냉정히 판단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단독주택을 지은 모든 비용이 8억이고 인근 신축 아파트 매매가가 7억 일 때, 단독주택에서의 삶의 가치가 1억 이상인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토지매입비+단독주택신축비 ≤ 인근 신축아파트 매매가
또한 토지는 아파트나 상가와는 달리 거래가 어려운 부동산입니다. 한번 매입하고 나면 매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충분히 검토하여 매입하기 바랍니다.
③ 마을이나 단지 분위기: 원주민과 이주민의 갈등 때문에 애써 지은 집에서 몇 년 못 버티고 다시 아파트로 이사 간 사례들을 우리는 많이 들었습니다. 건축주가 인연이 있는 마을이나 단지에 가서도 생각과 다른 갈등이 있을 텐데 전혀 인연이 없는 마을은 갈등 가능성이 많습니다. 만약 지인이 있거나 고향이 아닌 마을인 경우 원주민 마을과 거리가 먼 곳에 터를 잡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④ 자연재해: 태풍, 홍수 등 자연재해가 적고 경치가 좋은 지역을 선택합니다. 또한 만약 자연재해가 발생 시 쉽게 피난할 수 있도록 너무 외진 곳은 피합니다.
2. 대지계획
대지계획은 집의 자리를 잡는 과정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실내·외부의 정주공간 및 동선공간을 자리 잡는 과정입니다. 대지계획은 '캠핑지 자리 잡기'와 유사합니다. 또한 우리가 계획하는 단독주택지는 그리 크지 않아 땅에 그려가면서 다양한 대안들을 검토해 볼 수 있습니다. 이때 줄자를 이용해 정확한 거리와 크기를 검토해봐야 합니다.
① 배치계획: 햇볕(일조)은 건축물이 겨울철 일정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에너지원이며 자연 채광은 실내를 더욱 쾌적하고 밝은 분위기로 만들어줍니다. 대지가 여유가 있다면 햇볕을 충분히 받을 수 있도록 남쪽에 마당을 두고 동서로 긴 형태의 건축물이 유리합니다. 만약 동서로 긴 일자로 배치하기에는 대지의 크기나 주택동선 문제(복도가 길어지는 문제)가 있다면 남동쪽에 마당을 두고 건축물의 형태를 대지북측은 동서로 긴 형태로 대지 서측에는 남북으로 긴 형태로 모양을 두어 동쪽의 일사는 받고 서쪽의 일사는 막습니다.
② 동선계획: 현대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동차생활을 하기 때문에 주차장으로 진입이 다수이겠지만 아직도 보행으로의 진입이 주출입구이고 주차장을 통한 출입은 부출입구입니다. 그만큼 동선에서 보행을 통한 진입의 상징성은 아직도 큽니다. 대문에서 현관까지의 접근 통로, 자동차를 통한 접근 통로를 적절히 분리(동선분리)하여 배치합니다. 별도로 서비스야드(Service Yard)로의 자동차접근로를 확보합니다.
③ 토목계획: 토목계획은 정지 및 대지조성을 통해 토지를 대지(건축물 및 외부공간)로 이용할 수 있도록 평탄화 작업을 계획하는 것입니다. 또한 급배수 및 우수 계획을 포함합니다. 토목공사량이 많으면 공사비가 상승하여 본공사비가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가급적 토목공사량을 최소화하고 지형에 순응하는 건축을 계획합니다.
④ 조경계획: 조경 계획은 대지 내의 수목, 수공간, 오픈스페이스 (Open Space)를 계획하는 것입니다. 수목으로는 소음을 막아주는 차음식재, 프라이버시를 확보하는 차폐식재, 바람을 막아주는 방풍식재, 경관을 만들어주는 경관식재, 자연스러운 울타리 역할을 하는 관목 등이 있으며, 건축물, 오픈스페이스, 수공간과 조화롭게 계획합니다. 기존 수목과 수공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자연스러운 조경과 소생태계(Biotop)를 조성한다. 큰 나무를 피하되 불가피하게 큰 나무 근처에 주택을 배치하게 되면 나무는 이식하여 나무로 인한 피해를 예방합니다.
3. 평면계획
평면은 물리적 공간을 이해하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계획방식으로 우리가 사용하게 될 스페이스 프로그램(Space Program)을 계획하는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평면계획은 캠핑에서 '텐트 치기'와 유사합니다.
① 프로그래밍(Programming): 프로그래밍은 일상을 시각화하는 설계 방법입니다. 주택 내에서의 일상을 정리하여 최소구성단위로 나눈 후 설계 개념에 따라 재조합합니다. 재조합한 프로그램은 '스페이스 프로그램'의 기초가 됩니다.
② 조닝(Zonning): 스페이스 프로그램을 기준에 따라 집합체를 만듭니다. 아래표는 조닝의 예입니다.
생활 공간에 의한 분류 | 공적 생활공간 | 거실, 식사실, 응접실 |
사적 생활공간 | 침실, 서재 | |
가사 노동공간 | 주방, 다용도실, 가사실 | |
생리, 위생공간 | 욕실, 화장실 | |
기타 공간 | 현관, 계단, 차고 | |
사용시간에 의한 분류 | 낮에 쓰는 공간 | 거실, 주방, 식사실, 응접실, 다용도실, 가사실 |
밤에 쓰는 공간 | 침실 | |
낮과 밤에 쓰는 공간 | 서재, 욕실, 화장실, 현관, 계단 |
③ 향에 따른 공간 배치: 각실은 방위에 따라 실의 배치를 고려합니다.
남 | 동 | 서 | 북 | |
특징 | 여름철의 태양의 고도가 높아 주광은 차단되며, 겨울철은 실내 깊이 적극적으로 유도합니다. | 오전의 주광은 실내로 들어오고 겨울철 오전은 따뜻하며, 오후에는 춥습니다. | 여름철 오후에 주광은 실내 깊이 들어오므로 지양합니다. | 종일 주광이 들지 않으며, 겨울에는 북풍을 받아 춥고 광선은 종일 균일합니다. |
공간 배치 |
거실, 식당, 아동실, 테라스, 정원 | 주방, 서재, 침실, 욕실 | 욕실, 계단실, 현관, 복도, 건조실, 포치 | 욕실, 차고, 창고, 작업실 |
4. 세부계획
● 거실 (Living Room: L)
- 거실은 주방과 더불어 가족구성원들이 가장 많이 머무는 정주공간입니다.
- 가급적 남향으로 배치하여 채광, 일조가 유리하도록 배치하되 조망과 채광이 불일치할 때 채광보다 조망을 우선시합니다.
- 과거에는 4~6㎡/인 정도의 규모면 충분했으나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로 7㎡/인 이상의 규모가 필요합니다. (침실은 작아지고 거실은 커지는 것이 최근 추세입니다.)
- 외부 정원이나 테라스와의 접근이 용이해야 하며, 복도나 주방 등 다른 공용공간과의 연속성을 두어 깊이감을 두어야 합니다.
● 식사실 (Dining Room: D)
- 주방에 2~3인 정도 식사가 가능한 홈바(아일랜드 식탁)가 있다면 별도의 독립된 식사실이나 리빙 다이닝(Living Dining, 거실과 식사실을 한 공간에 두는 평면 형태) 도 가능하나, 중소규모 주택의 경우 다이닝 키친(Dining Kitchken, 주방과 식사실을 한 공간에 두는 평면 형태)이 효율적입니다.
- 독립된 식사실이 있더라도 주방과 식사실은 동선이 편리하거나 사이에 배선대를 두어야 합니다.
- 최근 식사실은 식사 외에 독서, 업무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 주방 (Kitchen: K)
- 최근 대분분의 주택은 편리한 U자형 작업대(싱크대)를 두어 넉넉한 수납공간과 독립성을 확보하고 식사실과 마주하는 작업대는 배선대를 겸합니다.
- 냉장고 공간을 2m 이상 (2대 이상) 확보하고 작업대와 식사실의 중간에 두어 누구나 접근이 쉽게 합니다.
- 서측은 피하며 거실과 더불어 주간에 가장 많이 쓰이는 가족 공동의 공간으로 경치가 좋고 채광이 충분한 곳에 위치합니다.
- 테라스는 동선이 유리한 곳에 배치하여 외부식사 시 준비가 용이하도록 합니다.
- 거실이나 식사실의 층고를 높게 계획하더라도 주방은 층고를 높일 필요는 없고 일반적인 2.5m 이하이면 충분합니다.
● 응접실 (Reception Room: R)
-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로 손님을 집에 초대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 응접실의 필요성일 줄어들고 있습니다.
- 가족의 특성상 응접실이 필요하다면 게스트룸이나 취미실을 겸하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 손님이 가족의 내밀한 공간까지 침범하지 않도록 가급적 현관에 가까이 배치하고 정원이나 테라스와 접하여 넓은 공간감을 확보합니다.
● 침실 (Bed Room: B)
- 최근 침실의 규모는 공용공간(거실, 주방)에 비해 작아지는 추세이나 침대 하나만 겨우 들어가는 너무 작은 침실은 피합니다. 최소 10㎡이상으로 싱글침대, 책상, 옷장이 들어가야 합니다.
- 서향만 피한다면 향보다는 사용자의 독립성과 안전성확보에 집중합니다.
- 주택 내외부의 소음(공용공간, 도로 등)을 피하고 침실 앞에 복도나 전실을 두는 것이 좋습니다.
- 침실 사용자의 나이, 성별, 취향을 고려하여 계획합니다. 가급적 사용자(방 사용자)와 충분히 상의하여 계획합니다.
● 서재 (Library)
- 과거에 비해 종이책을 보는 경우가 줄어들어 서재에서 서가(책꽂이)의 필요성은 줄어들고 있으며, 빔프로젝트나 대형 모니터로 영화를 보거나 컴퓨터로 SNS나 업무를 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 특히 코로나 팬더믹 이후 재택근무가 가속화되면서 서재는 제2의 업무공간이 되고 있습니다. 장시간 업무의 효율성 및 집중력을 위해 독립된 공간으로 서재를 배치해야 합니다.
● 다용도실
- 거실, 부엌 근처에 계획합니다.
- 세탁기, 건조기, 김치냉장고 등 각종 대형 전자제품과 수납장의 공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 소규모 가열대와 개수대를 두어 냄새가 나거나 장시간 가열이 필요한 요리를 하는 공간으로 사용합니다.
● 욕실 (Bath Room)
- 공용욕실의 경우 세면기가 있는 전실을 두어 최소한의 프라이버시를 확보합니다.
- 안방욕실(마스터존의 욕실)의 경우 별도의 드레스룸을 두어 '침실→드레스룸→욕실'로 이어지는 동선을 계획합니다.
● 테라스
- 테라스: 실내(거실, 식사실 등)와 실외(정원, 마당)의 중간에 완충지대로 보통 0.3~0.6m 높이의 단을 두어 여가를 보낼 수 있는 장소입니다.
- 과거 한국의 주택에서 좁고 긴 형태의 쓸모없는 형태의 테라스(한국 아파트의 베란다와 유사한 형태)가 많았습니다. 테라스에서 여가를 보내기 위한 프로그램이 있기 위해서는 최소 폭이 필요합니다. 좁고 긴 형태의 테리스보다는 장방형(최소폭 2.5m)의 테라스 2~3개가 더 좋습니다.
- 테라스에 면한 실내공간(거실, 주방, 서재 등)을 고려하여 크기, 모양, 마감, 지붕의 유무를 결정합니다.
● 현관 및 포치
- 현관은 주택 방문자에게 첫인상입니다. 단순히 출입을 위한 기능공간을 넘어 집주인을 표현하기 위한 디자인적 요소를 충분히 반영해야 합니다.
- 최근 현관은 신발이나 코트를 보관하는 전실의 기능 외에 다양한 부속시설들을 갖추는 추세입니다. 자전거, 골프백, 보드, 등 넓은 수납공간과 별도의 세면기(실내에 들어오면서 손을 씻는 세면기)및 무인택배함 등 다양한 편의시설을 두고 있습니다.
마무리
단독주택은 건축주의 삶을 반영하는 장소입니다. 여기서 '삶을 반영하는 장소'의 축소판인 캠핑장의 경험을 주택설계에 반영한다면 자신만의 공간을 만드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의 시대에 변화했듯이 우리의 삶도 변했습니다. 이런 변화에 맞추어 주택의 구조에서 세부적인 요소까지 변화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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