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설계는 건축예정지인 대지에 건축 프로그램(사용자의 요구공간)을 담는 과정이다. 다시 말해 건축 프로그램과 대지사이의 매개체로써 건축물이 존재하게 되는데, 이러한 이유로 건축프로그램 해석만큼이나 대지를 읽은 과정도 중요하다.
건축설계에서 대지를 분석하는 것은 해당 대지의 조건에 대한 설계자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관점에서 시작한다. 가령 건축설계의 과정을 문제 풀이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 대지분석은 문제 해석에 해당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문제 해석능력에 따라 풀이과정(건축설계)과 답(건축물)이 달라진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있으되 정답은 없다는 것이 건축설계의 모순이다. 문제(질문)에 해당하는 '대지'는 우리에게 문제에 대한 약간의 힌트만 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대지 해석에 공을 들여야 한다. 한 가지 관점보다는 다양한 관점에서 충분한 분석과 검토를 해야 한다.
괴테는 건축을 '얼어붙은 음악'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무형의 음악을 얼어붙게 하는 '실체화 과정'을 우리는 건축설계라 한다. 그런데 이러한 건축에서 실체화과정은 작가의 직관이나 통찰의 예술이라기보다는 논리와 구조화의 예술에 가깝다. 이 글에서는 실체화과정인 건축설계의 중간과정으로써 대지분석을 실체화 전단계인 시각화과정으로 이해하고, 대지분석의 시각화 방법으로 맵핑(지도 만들기), 모델링(모형 만들기), 타임라인 다이어그램을 소개한다.
1. 맵핑 (지도 만들기)
맵핑(지도 만들기)은 일정 장소의 특정 요소(고도, 수목, 길, 하천, 토질, 법적규제 등)를 선택하여 시각화하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해당 대지의 같은 높이의 점들을 연결한 선(등고선)으로 이루어진 지형도가 있다.
- 추출: 설계자는 건축설계를 위한 맵핑작업 시 필요에 따라 대지의 특정 요소를 추출하여 매핑한다. 예를 들어 건축주가 하천을 활용한 수공간이나 기존 수목으로 정원을 만들기를 원한다면 하천이나 수목의 위치나 종류, 특징 등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여 건축물(특히 접지층을 중심으로)과 유기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계획해야 한다.
- 왜곡: 건축에서의 맵핑은 물리적인 환경을 기계적으로 그리는 과정만은 아니다. 프로젝트의 특성이나 건축주의 취향에 따라 특정요소를 확대·축소하거나 변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에게 집에서 유치원까지 가는 길을 그려보라고 한다면, 아마도 아이가 좋아하는 빵가게나 놀이터는 크게 병원은 작게 표현할 것이다.) 왜곡된 지도는 설계과정에서 실체화할 수 있는데 가령, 상업시설 예정지를 관통하는 기존 인도(사도로서의 인도)를 과장 변형하여 소비자들을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다.
- 레이어링: 추출해서 만들어진 각각의 단층(지도)들 중 특정 층을 선택하여 레이어링(Layering)하여 새로운 지도를 그린다. 특정요소들의 병합은 창의적인 설계의 바탕이 된다. 또한 대지 주변의 상반된(대립된) 요소를 레이어링(Layering) 하여 프로그램의 조닝에 반영한다.
2. 모델링 (모형 만들기)
우리의 건축물이 자리 잡을 대지는 생각보다 크기가 커서 한눈에 보기도 어렵고,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기는 물리적으로 더 어렵다. 축소 모형을 만들면 다양한 각도로 대지를 관찰할 수 있다.
맵핑작업이 특정요소를 추출하여 변형하기는 좋지만 지도의 평면적(이차원적) 특성으로 삼차원적 상상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경사도가 심한 지형, 인접대지에 건물이 많은 도심지, 대지 내 물리적 요소가 많은 대지는 맵핑으로는 한계가 있으므로 필수적으로 모델링을 해야 한다.
- 복원: 지형은 오랜 시간 자연환경에 의해 형태를 만들었다. 자연에 순응하는 '약항건축'을 지향하는 프로젝트라면 짧은 시간 만들어진 기하학적 형태의 대지보다 유기적인 형태로 복원된 대지를 모델링하여 그에 어울리는 대략적인 건축물의 배치 및 외부공간계획을 검토할 수 있다.
- 변형: 경사지에서 건축물을 자리하기 위해 대규모 정지 및 대지조성을 지양하는 프로젝트라면 대지모양을 유기적인 형태로 조성(변형)하여 자연스럽게 건축물을 안착시킬 수 있다.
- 매스(Mass) 작업: 대지모형 위에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매스모형을 얹어보며 규모, 밀도, 형태, 비례 등을 검토한다. 우리는 스케일에 맞지 않는 건축물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스케일의 검토는 상대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성인과 아이의 신체적 비례는 다르기 마련인데, 아이의 비례로 성인의 키이거나 성인의 비례로 아이의 키를 가지고 있다면 얼마나 부자연스러운지 우리는 충분히 상상해 볼 수 있다. 적절한 스케일을 확인하기 위해 본격적인 설계 전에 매스 스터디 (Mass Study)는 꼭 필요하다.
3. 타임라인 다이어그램
대지분석에서 타임라인 다이어그램은 시간을 기준으로 해당 대지의 특징을 시각화하는 작업이다. 예를 들어 대지 주변의 소음의 정도를 시간에 따라 도표화할 수 있다.
- 일간 타임라인: 하루를 기준으로 24시간 동안의 환경변화(채광, 소음, 유동인구 등)를 분석하여 주간 및 야간 프로그램 배치에 반영할 수 있다. 만약 주택을 계획한다면 주간에 환경이 좋은 구역에 공용공간(거실, 가족실, 식당 등)을 야간에 환경이 좋은 구역에 사적공간(침실, 작업실 등)을 주야간 모두 환경이 좋지 않은 구역에 서비스 공간(욕실, 팬트리, 차고, 계단 등)을 둔다.
- 주간 타임라인: 한주를 기준으로 7일간의 환경변화를 분석하여 주중에는 각종 소음 유동인구로 환경이 좋지 않지만 주말에는 환경이 좋은 구역이라면 주말에 주로 사용하는 특별한 공간을 만들 수 있다.
- 연간 타임라인 : 해당대지의 국지기후를 계절별로 분석하면 패시브하우스를 위한 환경조절에 도움을 준다.
마무리
대지분석은 건축설계의 핵심단계로, 건축 예정지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과정이다. 이는 건축물이 환경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결정한다. 맵핑, 모델링, 타임라인 다이어그램을 통해 대지를 분석하고 시각화함으로써, 설계자는 더 나은 건축물을 만들기 위한 기초를 마련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은 건축물이 주변 환경과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기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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